Metonymic Memorial
Ideas
"죽음은 삶과 함께 찾아오는 현실이다. - 하이데거"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며 시작한다. 생명은 항상 유한성을 갖는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간혹 생각하지 못하며 살아간다.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은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죽음이 있기에 삶이 소중하며 가치있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즉, 죽음은 항상 우리와 공존하며 삶과 함께 실존하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죽음은 예로부터 회피하는 대상이었다. 죽음을 공포나 슬픔의 대상이라는 것은 보편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죽음은 입 밖으로 내서는 안될 이야기로 기본적인 예의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러한 죽음에 대한 인식은 현대에까지 죽음이란 존재에 인식할 수 없게끔하는 현실로 다가왔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좀 더 우리의 삶과 가까이 위치한다면 어떨까?‘라는 의문은 죽음을 회피의 대상으로만이
아닌 소중한 생명으로 여겨질 수 있게 한다면 사회적 소명을 다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Agenda _ 일상에서 죽은자를 기억하기.
추모 형태의 변화는 추모시설의 변화로 이어진다. 기존의 추모시설은 도시에서 님비화 되어 도시에서 배척되어졌다.
도시와는 관계맺지 않으며 추모를 하기 위해 도심 외곽으로 이동해야만 했기에 죽은자를 애도할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지고 기억속에서 점차 사라져간다.
과거 혈연위주의 추모공간은 획일화된 추모 시퀀스로 이루어져 슬픔을 강요하는 형태로 계획되었다.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방문하고 죽은자에 도달하기까지 무거운 분위기로 이어졌다.
죽은자를 일상에서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 추모공간은 생활영역으로 부담없이 들어와야 한다.
일상에서 도시와 관계맺는 추모공간을 형성하기 위해 주변과 소통할 수 있는 관계의 장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한다.
사회적 관계망의 확장으로 인해 다양화된 애도는 공간의 해체로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며 받아준다.
다중적인 관계들을 수용할 수있는 새로운 장으로써, 시퀀스의 능동적 선택은 새로운 감정 해소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병렬적 환유의 추모공간
죽음과 삶은 항상 병렬적으로 공존한다.
죽음의 모습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얻기도 삶을 통해 죽음이란 아쉬운 미련일지도 서로의 두 상반된 개념은 항상 함께 존재한다.
우리의 생활 속에도 수많은 상반된 개념이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 두개의 개념은 하나의 매개체를 통해 반대되는 관계를 갖는다.
한 매개체에 인접한 개념이지만 두개의 모습이 정반대의 형상을 가지며 만물을 구성하고 있다.
환유는 근접한 관계 속에서 의미를 확장하기도, 수축하기도 한다. 또한 상호 전이를 통해 의미가 교환 작용을 한다.